우리는 당장 ‘변화’라고 생각하면, ‘한번에’ ‘내가 원하는 때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하나님을 몰아붙여서,
빠르게 내가 성화되고, 가족들이 성화되고, 주변의 환경들이 풀리기를 바란다.
그러니 빠르게 열매맺기를 바라고, 빠르게 무엇인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관심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랜 시간 가운데 인격적으로 만드시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6000년의 역사를 사용하셨고.
이스라엘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40년.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3년의 시간을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에 뚝딱 만들지 않으시고.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다루심을 배우게 하신다.
우리는 이 과정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한다.
‘한번에’라는 것은 없다.
우리의 관심은 ‘열매를 빠르게 맺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회복을 경험하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변화시키시고 회복하시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연약함을 두시고, 우리 가정의 연약함을 두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원하는대로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지 않은 채.
당장 보이는 열매를 구하면 어떻게 될까.
변화가 되어도 다시 그 전으로 돌리고 싶어한다(동반의존 증상).
결국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 안에 안식을 누리는 삶, 복음 안에서 감사하고,
이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으신다고 하셨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시면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아무리 최고의 열매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의미 없다.
왜 가정이 변화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가 변화되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하나님께서 다루시기 위해서, 반드시 내 의지가 죽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안식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당장 상황과 환경은 최악을 말하고, 안된다고 말하고, 어렵다고 말하는 데.
복음이 주는 것으로 안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빠른 길을 제시한다.
조급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당장은 뭔가가 이뤄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열매는 없고,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
“빨리. 빨리. 빨리. 하나님 빨리요.
신앙이 어릴수록 하나님께 보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공급하심을 믿고, 내 존재와 정체성을 믿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핵심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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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 변화에는 한 번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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